프론트맨의 시대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의 함의(含意) 분석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선장은 자신은 책임자가 아니라며 가장 먼저 도망을 갔다. 사장이나 회장, 대표라는 직함을 내건 사람들은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바지 사장이라는 말은 그 직함의 허울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역시 그는 또한 누군가에게 고용을 당한 사람일 뿐이다.

문제가 있는 조직이나 회사일 경우에는 그가 모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을 뿐이다.

영어에는 프론트맨(front man)이라는 말이 있다. 프론트맨은 부정적인 단체나 조직 따위에 앞에 간판으로 내세운 사람을 뜻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흥행을 하면서 이 프론트맨이 새삼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게임을 주도하고 운영하는 사람이어서 가장 우두머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VIP의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이 등장하면서 확실하게 그는 고용인 쯤에 불과했다. 예전의 콘텐츠에는 이 정도의 악행 게임을 벌이는 사람이라면, 조커 같은 단일한 악당이 설정이 되어야 하지만 이제 시대와 세상은 바뀌었다.

빌런 즉 악당들조차 이제는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움직일 수밖에 없다. 프론트맨 옆에서 죽음의 오징어 게임을 운영하는 분홍색 관리인들 역시 돈을 받고 고용된 이들일 뿐이다. 드라마 ‘검은 태양’에도 백모사(유오성)이라는 대단한 악당이 등장하지만, 그는 독자적인 세력을 이끌어 운영하는 리더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콘텐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점은 악당들도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이고 악당의 자유의지마저 이제는 박탈하고 있는 구조와 환경 속에 우리가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456억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 처하게 된 이들은 모두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라고 하고 있다. 그들은 투표를 통해서 스스로 죽음의 상황을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되돌아오는 어떤 구조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를 보는 콘텐츠 이용자들도 동감하는 것이 문제의 지점이다.

자유의지와 자율 선택이 가능하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가 결합할 때 개인의 자율적 선택은 그들의 목숨을 언제든 해쳐도 그를 보호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게임은 누구나 자유롭게 심지어 재미를 위해서 참여할 수 있고 비록 죽음이라는 결과를 받는다고 해도 실제로 죽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 구조 속의 게임에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뜨거운 물 속의 개구리처럼 그것을 당장에 느끼지 못할 뿐이다.


노인은 그렇게 말한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은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삶이 재미가 없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 버느라 재미를 느낄 여유가 없는 법이겠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즉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사실 이는 비현실적인 말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돈을 성취할 때마다 보람의 재미를 느낀다. 정작 문제는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빚을 끌어와 미래를 담보 잡힌 사람들이 재미가 없는 것이다. 또한, 돈이 많이 있음에도 그 돈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더욱 더 돈을 벌려고 하는 이들은 돈 없는 상황에서 돈에 탐식을 내는 이들과 같이 삶이 재미가 없다. 456억 원을 받아도 재미가 없는 것은 돈을 재미있게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남에 똘똘한 한 채를 사기를 원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남에 적응해 사는 이들은 그 아파트를 팔 수가 없다. 거의 대부분 그 아파트에 살다가 죽는다. 물론 그 비싼 아파트의 이자와 취득세, 재산세, 관리비를 내다가 세월이 다 간다. 그것은 결국 숫자에 불과해진다. 사람이 만든 숫자에 사람이 말라 죽어간다.


‘오징어 게임’은 아마도 그 게임의 판을 만든 부자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부자들이 재미가 없다는 말에 모순을 드러내는 힌트가 있다. 게임판을 만든 부자들이나 그 게임을 운용하는 프론트맨인 관리자 그리고 실제 목숨을 내놓고 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에 놓은 말들일 뿐이다.

인간이 돈을 만들고 금융 거래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사실 이는 다른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소외시킬 운명이었다. 더 이상 인간이 만들어낸 금융 자본시스템은 제어되지 않고 마치 자체 생명력을 가진 듯이 움직이고 있다. 서로 치고 받고 싸우고 때로는 서로 제거를 하며 사라지겠지만 돈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금융자본 시스템은 여전하고 인간이 만든 도구들을 흡수하며 더욱 강력한 권능을 행사하고 있다.

소수는 프론트맨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매우 소수들은 간혹 부자가 되겠지만 대다수는 플레이어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결국, 오징어 게임에서 함의하듯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만이 유일하다.

자발과 자유 선택의지로 자기 스스로 상황에 빠지는 것은 스스로 구제할 수도 국가권력도 개입하기도 힘든 시스템에 우리는 있다.
* 칼럼 기사는 작가의 주관적인 작품이며, 본사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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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