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1)

문화평론가 김헌식 작가 소설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김헌식


싸이렌이 길게 한 번 울렸다. 구급차인가, 길게 강하게 울린다. 그래 경찰 순찰차였다. 오라는 구급차는 오지 않고 경찰이다. 그리고 뒤에 승합차가 한대 따랐다. 과학수사라는 단어가 옆에 선명했다. 방향이 학교쪽으로 오는 듯했다. 아니 왜 과학수사대까지. 교내에 사고라도 난 것일까. 요즘에는 원하지 않음에도 학교가 경찰서와 친해졌다. 작은 일이라도 늑달같이 신고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수사는 아직 친하지 않다. 하지만 학교를 지난 두대의 차량은 학교 옆 공터에 머물렀다. 포크레인과 인부들이 공터에서 뭔가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들 머리 위로 뭔가 하얀 것이 피어올랐다. 불을 피우는 건가. 그 공터는 본래 그냥 비어 있었던 곳이 아니라 산부인과 병원이 있던 곳이었다. 산부인과 병원을 밀어내고 새로운 빌딩을 올린다고 했다. 어쨌든 이 두 대의 차가 왔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일이었다. 창문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네, 들어오세요”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교감 선생이었다. 허둥거리며 약간 당황스러운 얼굴빛으로 들어왔다. 
“구급차는 오지 않나요?”
“아직 오지 않네요.”
“아니, 119가 이렇게 늦어서야”
아이 하나가 계단에서 헛디뎌 찰과상을 입었다. 일단 보건실에서 응급 처치를 했는데 혹시 모르기 때문에 구급차를 불렀다. 겉으로는 찰과상이지만 안으로 뼈가 상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학부모가 항의할 수도 있었다. 미리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의하나 언론에라도 나오면 학교 이미지는 물론 개인 신상에도 좋을 게 하나도 없다.“저, 교장 선생님 아직 이야기 못들으셨죠..?”교내에 일이 생기는 경우에는 대개 교감을 통해 듣는 교장이었다. 신교장은 무슨 일을 말하는지 몰라서 교감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이야기 말입니까? 학교에 무슨 일이 있나요.”“경찰차가 말입니다.”“경찰차는 학교에 오지 않고 옆 건물터로 가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교장 선생님 보고 계셨군요.”신교장은 또 자기가 모르는 일이 있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항상 교감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짐짓 우월하게 내세우곤 한다. 모든 정보는 자기에게 모아지고 전달된다는 점을 드러내려는 성향이 있었다. “혹시, 우리 학교 학생이 저기에서 사고를 당했나요?”
며칠째 악몽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점심을 거른 신 교장은 좀 피곤한 내색을 하며 다시 물었다. 교감은 새삼 뽐내듯이 말했다.
“아뇨, 그렇지 않고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는 말했다.
“그곳에서 뭔가 발견이 되어서요.”
순간 신교장은 안심이 되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안경을 고쳐 쓰고 물었다.
“뭐가 나왔나요? 유물이라도 나온 거에요?”
“문화 유산이라면 좋을 텐데 별로 좋은 건 아니에요.”
좋지 않은 게 나와서 뜸을 들여 말한 것인가. 아니면 학교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인가. 교감도 학교에 도움이 안될 일이 터지면 좋을 일이 없다. 실무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뭐가 발견이 되면 도로 묻으라고 할 태세일 것이다.
“도대체, 뭐가 나왔는데 그러세요.”
“아 네, 유골이 나왔어요. 유아 유골이요. 한 두개 아니라고요”
“아이들 유골”
신교장은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학급 축소 관련해 회의가 있는 날이죠?”
“아 네 이따가 3시에 예정입니다. 요즘 저출산으로 아이들 수가 자꾸 줄어서 학습수가 줄어 큰일입니다.”
더 이상 응대하지 않고 신교장은 잘라 말했다.
“그럼, 이따 봅시다.”
“네. 네...”
교감 선생이 나가고 바로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
“이따 보자고 했는데 자꾸 들어오나요?”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 온 사람은 교감이 아니었다. 날카롭지만 안정된 눈매에 단단한 몸집의 중년 남성이었다. 누구냐고 묻기전에 그는 신분증을 제시했다. 경찰서에서 나왔다고 했다. 순찰차와 과학수사 차량은 학교에 오지 않았지만 형사는 학교에 들어왔다. 그것도 교장실에 들어온 것이다.
“혹시 저 앞에 산부인과에 대해서 아시는 게 없을까요?
저녁 약속 시간이 다되었는데, 갑자기 점심을 거른 탓에 조금 생기려한 식욕마저 사라졌다. 아까 들었던 산부인과 유골 때문일 것이다. 몸 상태나 기분이 누군가를 만날 상황은 아닌데 제자와 한 약속이라 물릴 수 없었다. 이번에 임용 고사에 합격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샐러드바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 낮에 있었던 공터가 자꾸 어른 거렸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연희였다. 여전히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래, 왔구나. 안녕, 오랜만이네.”
이렇게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제 지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실 제자가 찾아온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에는 몰랐지만 갈수록 학생들이 대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옛날처럼 무조건 따르거나 지시 명령을 들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친구같은 존재로 바뀌었다. 부모라는 존재도 그렇게 된 지 오래인데 하물며 교사는 말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선생님, 죄송해요. 집회에 참여하고 오느라 좀 늦었어요.”
“네 낙태 합법화 시위에요. 여성의 몸도 소중하니까요.”
아 그랬구나. 연희는 모범생이었다. 그렇지만 얌전한 모범생은 아니었다. 언제나 할말은 다 하는 똑부러지고 똑부러지고 야무진 학생이었다. 그런 집회에 다녀온다는 것이 이해될만 했다 최고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1등을 독차지한 녀석이었다. 당연히 임용고사에도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임용고사에 합격한 걸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많이 했어.”
“별 말씀을요 누구나 다 하는 것인데요.”
사실 이런 말을 건네는 것도 형식적이다. 누구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지금은 몇년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라 교사를 많이 뽑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고가 많고 교사가 된다는 것은 힘든 과정을 겪어낸 인간 승리이기도 했고 축하해줄만한 일이 되고 있다.
“합격하고도 걱정이죠.”
연희의 말이 무슨 듯인지 모를 수 없었다. 합격을 해도 최종 임용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합격하고도 최종 부임까지 시간을 걸리는 동안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일도 흔하다.
“그래도 기다라면 되지.”
“선생님, 합격만 하면 뭐든지 다 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친구들을 보니 막상 임용될 지역이 변두리 지역이면 출퇴근도 힘들고 여러모로 불편하더라고요.”
“경기도지역은 더욱 더 그렇지. 경기도가 참 넓은 곳이거든.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라면 좋겠지만.”
“네 연천이나 평택도 경기도에 속하거든요. 만약 그런 곳이 된다면 거긴 생전 가보지도 않은 곳이라 참 걱정이죠.”
“요즘에는 김포에도 신도시가 많이 생기니까 그곳에 발령받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신도시에는 젊은 인구가 많으니까 젊은 부부도 많을 거고”
“그쪽은 많이 생기는데 아직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지는 않았는데, 중고차를 한대 사면 좋을 것 같아요.”
매우 치열한 경쟁의 서울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경기도 지역이라 해도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경기도는 지역이 넓기 때문에 어디로 발령받을 지 몰랐다. 가평같은 경우에도 서울에서 다니기에는 힘든 면이 있었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가까울수록 서울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는 편한 법이다. 아니 꼭 서울 안에서 성장하지 않고 서울 주변 위성도시 출신들에게는 그외 군단위 학교에 가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남자 친구는 잘 있니?”
“헤어졌어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말해서 신교장은 약간 당황했다. 꽤 오랜동안 사귄 남자친구였고, 결혼까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터였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묻는 것도 사실 지나친 사생활 침해일 수 있다는 것이 요즘의 인식이다. 그냥 ‘그렇구나.’하고 말았다. 연희가 오히려 다시 말을 했다.
“선생님이 제 롤모델이에요.”
“아, 그랬어?”
“네. 학교 다닐때부터 그랬어요. 왜 그런지 안물어보세요?”
“내가 네 롤 모델이라니 영광이다.”
누군가 나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기분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구나 삶은 고민이있는 법이다. 과연 그 고민들을 온전히 보고 판단하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환상을 갖고 있다면 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오해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이 행복하고 즐거움만 가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고통이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섭섭함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아이는 왜 나를 롤 모델로 삼으려는 것일까.
“저도 선생님처럼 교장 선생님이 될 거에요. 교장이 되려면 선생님처럼 결혼을 하지 않아야겠죠. 그러니 남자친구가 어찌되었든 상관이 없죠.”
‘그런 거였구나.’ 나처럼 결혼을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으니 아이가 없는 것을 전제하고 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교장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른 남자교사들보다 우월한 성과를 보여야 했다. 남자들은 동료이기 전에 경쟁상대였다. 다른 여교사들이 결혼과 육아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다. 인사고과를 위해서는 가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학교에 투여해야 했다. 학교에서도 나를 따르는 아이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었다. 성적이 뒤쳐지는 학생들은 문제만 일으키고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성교육과 입시 교육이 필요한 현실은 너무나 달랐고 그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어쨌든 연희에게는 멋지고 당당한 선생님이다. 혼자 살아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더구나 남자교사들 앞에서도 언제나 능력을 인정받는 모습이 멋졌다. 왜 선생님이라고 힘든 점이 없을까. 그런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다. 사회적으로도 능력을 받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충족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 없는 삶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선생님은 몇 개국 여행을 하셨어요?”
“꽤 된 이야기인데, 아마도 100개국은 갔다온 듯 해.”
“뮤지컬과 연극, 미술전시도 참 많이 다니셨잖아요. 고흐전에는 저도 데리고 가시고요. 뮤지컬 맘마미아는 감동이었어요.”
“그래 고맙다 기억해줘서. 안 본 작품이 있을까 싶네.”
“네 저도 세계 여행을 할 거에요. 모든 나라에 가고 싶어요. 요즘에는 아프리카에 많이 가더라고요. 바람의 딸처럼 자원봉사를 하며 살 수는 없지만, 틈나는대로 여행을 갈 거에요.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려고요.”
사실 찾아오는 제자들에게서 이런 말은 자주 듣는다. 요즘 세대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자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담론이 흔하기 때문이다. ‘포미’(For me)세대라고 했었나. 나를 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대. 반드시 그런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겠지. 억눌린 집단주의 문화에서 해방되려는 욕구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해방담론으로도 보인다. 그런 점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혼자살 수 있도록 각종 상품과 서비스는 증가일로에 있다. 상품과 서비스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소비해야 어땠든 이익이 남으니까 말이다.
“저도 여행과 공연을 좋아하거든요.”
빅데이터인가 그런 게 비슷했다. 사람들이 많이행위를 하면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 말이다. 여행 다니고 공연장을 찾으면 좋아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다니고 공연 전시장에 다닌 것은 사실 내가 그 분야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가정이나 아이에게 여성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는 물론 시간을 투여하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는 셈이다. 나중에는 갈 여행지가 없고 접할 공연이나 전시회도 별로 없게 되었다. 뮤지컬은 정말 수십번 본 작품도 있고, 아직도 리메이크된 명작은 곧잘 찾기도 한다. 사실 오늘도 연희가 아니었다면 연극을 보러갈까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만큼 와 닿는 작품은 많이 없다. 연희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갈수록 집에 가는 것이 편하다. 다른 데 가는 곳보다 편한 집. 고양이만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때론 쓸쓸하고는 한다. 길이 무섭기도 하다. 이전에 학교에 있을때는 아직 교감이었는데 교장이 추근대었다. 심지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혼자 살고 있으니 이렇게 찝쩍 대는 남자들이 노골적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그 남자들은 유부남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결혼정보회사를 뒤늦게 알아봐야 하나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자가 있어야 남자를 막을 수 있는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혹을 하나 더 붙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새삼스럽게 그렇게 하다가 오히려 낭패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집에 들어가면 내가 아침에 먹다만 커피잔이 그대로 있겠다. 접시에 남은 사과 한 조간은 그대로 말라 붙어 있을 거고. 1년 365일 모든 것은 내가 놓은 그대로다. 침대에 누울 때도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나혼자다. 사람들과 그나마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학교 급식시간이다. 물론 점심은 외부에서 손님들과 같이 먹는 경우도 종종있지만 저녁시간에도 약속을 만들어야 그렇다.
“연희는 혼자 사니?”
“부모님과 같이 살아요.”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네 아직은 건강하세요. 아마 오늘도 전화가 오겠지요. 언제 들어오냐고요. 이제 그런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항상 간섭이세요. 나이가 몇살인데...”
“그래도 부모님 때문에 연희가 이렇게 잘 성장했잖아.”
“글쎄요...아직도 아버지는 저를 가르치려 들어요.”
신교장은 연희가 어떤 때는 부럽기도 하다. 사실 신교장은 교사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드라마 피디가 되고 싶었다.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반대했다. 대학을 보내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시집이나 잘 가면 된다고 했다. 투쟁에 투쟁을 거듭한 결과 아버지는 사범대에는 보내줄 수있다고 했다. 교사가 되면 시집을 잘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것도 1년치 등록금만 아버지가 주는 조건이었고 나머지 졸업할 때까지는 직접 벌어야 했다. 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과외였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임용고사에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중할 시간이 부족했다. 나증에 우여곡절 끝에 교사가 되고 나서 선 자리를 부지런히 알아봐주셨다. 하지만, 교사가 된 것은 결혼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배우자가 교사이기를 바라는 남성들은 대개 불안정한 직장에 있거나 미래의 전망이 불투명한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나 공무원이 배우자 1순위에 오르는 것이겠다. 정말 능력이 있는 남성들은 여자의 직업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오히려 직업보다는 얼굴과 몸매, 나이를 봤다. 더구나 주체적인 여성보다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여성을 원했다. 나아가 자식을 잘 키워줄 배우자가 이상형이었다. 아이를 바라지 않는 남성들은 대개 부양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거나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 가짐이라면 배우자에게 의존하거나 언제든 배우자와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듯 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쿨하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달리 보면 자기 중심성이 강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걸 보통 이기적이라고 할 것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필사적으로 피임을 강요하다시피했고, 어떻게든 임신을 막았다.


무심코 옆에 본 텔레비전 자막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10년간 신생아 50만명 줄어...출생율 0.98%...
“우리 와인 한 잔 해야지. 레드, 화이트?
스마트폰을 왜 놓고 왔을까. 요즘 정신이 깜빡깜빡이다. 벌써 치매는 아닐텐데, 건망증과 치매는 좀 다른 증상이라고 하지 않나. 교장실로가는 복도는 어둡다. 복도의 불은 스위치를 올려야 켜진다. 자동으로 사람이 들어오면 불이 켜졌으면 좋겠다. 진즉에 갈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 같아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장실 문을 잡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둑 고양이 소리인가 싶었다. 요즘에는 길고양이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반려동물이 늘어나면서 유기되는 동물도 늘어나고 있고, 고양이는 밤에 여기저기 야행을하며 울음 소리를 냈다. 고양이 울음소리는 아이 울음 소리와 같다. 고양이 소리는 건물 밖이 아니라 건물안인 듯 싶었다. 교장실 맞은 편에 화장실에서 소리가 나는 듯 싶었다. 화장실안에 고양이가 들어왔나 싶었다.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기 때문에 더 관심이 쏠렸다. 고양이에게 짝을 지워주고도 싶다. 암컷이면 더 좋을 듯 싶다.
“나비야~ 나비야 여기 있니”
첫번째 칸은 아니었다. 가운데는 건너 띄고 마지막 칸을 열었는 데 거기에도 없었다. 그럼 두번째 칸이었다. 두번째 칸을 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칸에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에는 없었다. 잘 못 들었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교장실로 돌아오려고 문을 잡는데 다시 울음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쪽이었다. 그래서 다시 화장실로 갔다. 역시 아무데도 없었다.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울음소리가 천정에서 들렸다. 고양이가 벽을 탔나보다. 천정을 올려보았다. 천장에 있는 것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어린 아이가 천장에 붙어 울고 있었다.
“아...”
비명 소리가 화장실에 울려퍼졌다. 그러자 밖에서 누가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남자였다. 쓰러진 신교장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에요?”
“아...천장에 천장...”
“천장에 뭐가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네...?”
천장에는 그가 말한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서야 신교장은 어떤 사내가 자신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인가 본듯한 얼굴인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바로 자세를 고쳐잡고 일어났다.
“누구셨죠?”
“네, 낮에 찾아왔던 경찰입니다.”
화장실 불빛에 역광이었던 상황이라 잘 보이지 않던 그의 얼굴이 그제서야 보였다. 아니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이 형사는 다시 학교에 찾아왔다는 말인가.
“아, 너무 늦은 시간이죠? 지금 저 밖에서는 아직 유골 발굴 정리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몇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요.”
문을 연 교장실은 중앙 난방식이라 썰렁했고 한기가 느껴졌다.
“뭘 물어 보신다는 거죠?”
“산부인과 터에서 유아 유골들이 나왔는데 저는 이 여고 학생들이 그 병원에 가지 않았나 싶어서요.”
“병원에 갔다는 건 낙태를 말하는 건가요?”
“뭐 그런 셈이죠?”
“아니 무슨 말이시죠, 말도 안됩니다. 제가 그럼 임신한 학생들 낙태를 그 병원에서 하게했다는 말인가요. 저는 여기에 부임한 지 3년밖에 안되었어요.”
“아,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고요, 혹시 아시는 게 있는지 싶어서요.”
“전 모릅니다. 무슨 여고생들이 낙태를 하러 그 병원에 갔다는 말을 합니까. 지나치네요.”
“왜 이렇게 강하게 부정을 하시는 건가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왜 그래요. 난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니 역시 당신이 맞는 것 같은데. 당신이 여학생들의 낙태를 강요했잖아.”
“아니라고. 아니야”
순간 신교장은 교장실을 튀쳐 나갔다. 복도는 어둠 뿐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고양이 울음 소리는 곧 아기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아니야”
누가 신교장의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흔들림에 신교장의 눈커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눈앞에 있는 것은 마주하기 껄끄러운 형사가 아니었다. 연희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꿈이었단 말인가.
“선생님,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와인 몇잔에 쓰러지셔서 깜짝 놀랐네요.”
역시 꿈이었나. 요즘 잠을 통 자지 못해서 피곤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제자 앞에서 잠들다니 이건 너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건 애써 나이 탓이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싶네. 의지력이 문제가 아닌가.
“그래 미안해 연희야, 내가 주첵이다. 예전에 하지 않던 짓을 하네.”
“피곤하면 그러실 수도 있죠. 밤에 잠을 잘 주무시지 못하나봐요.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니 없어. 잠이 없어지는 거지. 요즘에는 밤에 무서울 때도 있어.”
“선생님께서도 무섭다고요? 의외네요.”
“뭐가 의외야?”
“선생님은 무서움 같은 건 없을 것 같으셨거든요.”
연희에게 신교장은 학생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는 모습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움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갑자기 꿈에 나왔던 화장실 천정의 아기가 떠올랐다.
“내가 만약 아이를 뒤늦게 낳았다면 지금 고 3이겠지. 폐경전에 낳았더라도 말이야. 그럼 네가 가르치고 있겠지. 네가 임용고사에 합격하고도 발령을 받지 않는 일은 없을 지 몰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이를 원하셨다는 말씀인가요.”
“요즘에 신문을 보니 난자를 보관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그 때 난자를 보관했다면 지금 아이를 낳아 키워도 좋지 않을까 싶네. 연하남과 결혼을 하고.”
“뭐라고요,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생각하는 선생님과 다른 분인 거 같네요.”
“내가 뭐가 달라
“달라요. 선생님이 아닌 거 같아요!”
“나는 나야”
“아닌거 같아요, 참 아까 누가 찾아 오셨어요?”
“그래? 누가 찾아왔어?”
누군가 테이블로 갑자기 다가왔다. 남자였다.
“접니다.”
그 사내는 아까 형사였다. 그리고 꿈에도 나왔던 형사였다.
“아니 당신이 왜 또...?
“제가 오면 안됩니까. 확실히 당신이 그렇게 했군요, 혹시. 당신의 아이도 그곳에서 버렸습니까?
“뭐라고 말도 안돼. 내가 아이가 어딨어?”
“제가 수사관 생활을 하다보니 하나의 결론에 모아지더군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었죠. 맞는 것 같아요. 서까지 갑시다.”
“아니 왜이래 연희야~ 이 사람 왜 그래”
연희는 멀뚱하게 서 있을 뿐이었고 형사가 어떻게 해도 된다는 듯이 뾰로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생님은 제가 알던 분이 아닌 것 같아요.”
“아니야, 나는 나야 나라고!”
매장에서 끌려나오는 가운데 연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무심히 한번 쳐다보고 곧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그러는 가운데 누군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눈 좀 떠보세요”
해는 창밖으로 기울어지고 있었고 신교장은 교장실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은 교감 이었다. 마침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사이렌 소리...?”
“네 교장 선생님. 119응급차가 왔어요. 나가 보셔야할 듯 합니다.”
“아 그렇군요 경찰차는 안왔나요?
“경찰차라니요? 경찰차가 왜... 혹 학부모가 신고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안왔으면 됐습니다.”
“아 네 요즘 학부모들이 조금만 다쳐도 경찰에 신고하고 그러는데 이번 일은 그렇게 까지 할일은 아닌 것 같고요. 그리고 이건 저출산 관련 학급 운영에 관한 회의 자료입니다.”
똑똑!
“선생님, 안녕하세요.”
연희였다. 연희는 반갑게 인사했다. 신교장은 연희가 낯설게 느껴졌다.
교감은 연희에게 말했다.
“연희는 참 교장 선생님을 좋아해 옛날부터.”
“그럼요, 선생님같은 분이 될 거에요.”
“그래...”
신교장은 연희 뒤로 하얀 그림자가 어른 거리는 것을 보았다. 꿈속 공터에 봤던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봤던 아이의 얼굴이었다가 곧 사라졌다. 그 표정은 밤마다 꿈에서 본 익숙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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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