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농악 발굴을 위한 원로 농악인 방문 취재

마지막 풍물단원 영종의 혼 풍물의 흥이 살아있다!


▲ 용유 을왕리 늘목마을 풍물단원이셨던 김득수(오른쪽), 정인화(왼쪽) 어르신
세계적인 국제공항 도시이자 국제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영종’ 이라고 불리우는 도시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시대 유적이 영종도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인류가 이 지역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소개하는 유물은 2018년 4월에 개관한 영종역사관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유물은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면 볼 수 있지만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무형문화재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특히 무형 문화예술은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로 인해서 사라져 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50~1960년대까지 이 지역 마을마다 왕성하게 흥행하던 농악은 지금은 맥이 끊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이 2008년에 자발적으로 간행한 영종용유지(펴낸이 유순모, 엮은이 조우성)에 따르면 영종농악을 부흥하기 위해 당시에 농협 부녀회장이던 공길녀씨가 영종농악대장을 맡아서 중구 영종출장소(김광원 소장)의 지원을 받아 농악부흥 운동을 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는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없다.

영종 농악의 뿌리를 찾기 위해 YCN영종시민뉴스는 영종 농악과 관련해서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면담 취재를 진행하고 있다.
제일 먼저 영종역사관 자문위원이신 허재봉 선생님의 소개로 지난 1일(화) 영종도 동강리 아랫말 지역에서 대대로 살았다는 토박이 장중진(張中鎭, 66세)씨를 만났다.
장중진씨는 부친인 장만춘(호적명 장갑주)씨가 12발 상모를 돌리던 북잡이였는데, 1960년대 말에 소고 단원을 하던 아주머니가 빠지게 되어 어린 나이에 소고를 맡아서 풍물단에 참여해서 상모돌리기를 했다고 한다. 1960년대에도 영종에는 각 마을마다 풍물단이 있었고, 매년 정월 초사흘부터 대보름까지 마을을 돌며 두리패가 놀았는데 맨 먼저 마을 우물 마당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구읍뱃터 부근 바탄에서는 매년 마을 풍물 경연대회가 있어 여러 마을에서 참가했으며, 느티나무가 있던 곳에서는 씨름대회도 열렸다고 한다. 모내기를 하거나 김매기를 할 때도 풍물을 놀았다고 한다.
아랫말 풍물단 상쇠는 장명근씨였는데 20여년 전에 작고하셨다고 한다. 장중진씨 부친이 힘이 좋아서 3층 무동을 태우고 놀았으며, 생업이 목수라서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을 만들어서 풍물단이 사용했다고 한다.
풍물단은 20여명이었는데 기잡이, 상쇠, 부쇠, 징, 장구, 북, 호적(나팔, 태평소), 소고 등으로 구성됐다. 장중진씨는 1975년 입대하기 전까지 소고와 상모돌리기를 했는데, 풍물단원들이 지금은 모두 돌아가시고 유일하게 막내 단원이었던 장중진씨가 생존해 있지만 지금은 당시의 풍물을 재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다음에는 역시 영종역사관 자문위원인 서병구 선생님의 소개로 지난 6일(일) 용유도 지역에서 풍물단원으로 활동하셨다는 김득수(金得洙, 86세), 정인화(鄭寅化, 84세) 어르신들을 만났다. 두 분은 용유도 을왕리 지역 늘목마을 못우물에서 태어나고 여태까지 사신 토박이라고 한다. 나이는 두 살 차이가 나지만 용유국민학교를 같이 다니고 평생을 친구로 살아오신 죽마고우다.
두 분은 1958~9년도에 군대 가기 전에 젊었을 때 동네에서 풍물단원으로 활동했는데 김득수 어르신은 북잡이, 정인환 어르신은 장구를 연주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인 1960년대에는 풍물단 놀이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매년 정초에서 보름까지 마을 집집마다 다니며 풍물과 덕담을 해 주었고, 덕담을 말해 주는 단원의 말솜씨가 좋아서 누구나 감탄을 했다고 한다. 대보름날에는 집집마다 추렴한 쌀과 돈을 모아 도가집 마당에서 동네 잔치 마당을 벌였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흥겹게 놀았고, 풍물단도 사자놀음, 양반놀음, 곱추, 양반, 포수, 여복(女服) 등을 구성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한다.
마을에 손 재주가 좋은 이무강이라는 분이 있어서 3미터 가량의 용기(龍旗)를 만들어 깃발을 앞 세우고 다녔으며, 이웃 마시랑 마을에서 공연 초대를 받아 다녀 오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용유도에 영종도 풍물단 하나가 와서 풍물을 겨뤘는데 패하고 깃발을 거꾸로 들고 간 일이 있다는 무용담을 들려 주었다.
용유도 늘목마을 농악단도 3층무동을 했으며 이기춘이라는 분이 맨 아래에 서고, 가운데 중아이를 맡은 김칠봉씨를 탄력을 줘서 집어 던지면 멋지게 받아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고 한다. 김기복이라는 분이 모개비를 하면서 풍물놀이 일정을 잡고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면서 추렴도 잘해서 풍물단이 맘 놓고 놀았다고 한다.
풍물단은 15~18명으로 구성됐는데 깃발, 호적, 상쇠, 부쇠, 제금(바라), 징, 장구, 북, 소고의 순으로 움직였으며 흥이 나서 놀기 시작하면 밤새 놀기도 했다고 한다.
용유동 어르신들도 풍물을 어렸을 때부터 익혀서 따로 배우지 않고도 어른들이 역할을 주면 바로 단원으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정인화 어르신은 장구를 칠 때 한 손은 채를 잡지 않고 맨손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요즘 장구 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하신다. 정인화 어르신의 부친도 북잡이였으며, 정경태라는 분이 상쇠로 활동하며 상모돌리기를 무척 잘 했다고 한다.

풍물과 함께한 가락으로 길군악, 자진가락, 춤가락, 양반놀이가락, 무동놀이가락  등이 있었다고 한다.

풍물놀이를 왕성하게 하던 1950년대에 마을에는 약 130가구가 살았다고 하며, 지금은 약 300세대가 되지만 풍물은 이어지지 않고 있어서 아쉽다고 하신다.


이분들은 지금이라도 잘 하는 상쇠가 있거나 음악이 있으면 장구와 북은 언제든지 칠 수가 있다고 노익장을 과시하신다. 취재진으로 함께 간 춤동동 이야기할머니 배정인 선생님은 장고와 북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무척 아쉬워 하며 가까운 시일 내로 다시 찾아 뵙고 연주를 부탁드리기로 했다. 어르신들도 흔쾌히 승낙하며 후일을 기약했다.
취재는 정인화 어르신 댁 뒤뜰에 있는 100년이 넘은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진행했는데 시원하고 마을 정취가 무척 아름다웠다.


취재진은 YCN대표 발행인 전수철, 문화예술 PM 배정인 시민기자, 교육 PM 이기열 시민기자가 함께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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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철 기자 다른기사보기